을지로는 다양한 산업의 출발점이자 요즘 젊은이들에게 각광받고 있는 동네다. 철물골목, 인쇄골목, 타일거리, 가구거리 등 다양한 산업들이 옛날부터 무리 지어 영역을 이루고 있고, 산업이 오래된 만큼 손글씨로 쓴 간판들과 허름한 가게들이 많다. 거기에 가게를 열고 분주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과 골목을 누비는 삼발이나 자전거의 모습까지 더해지면 을지로스러운 풍경이 만들어진다. 무엇이 을지로스러운 것이며, 또 무엇이 그 을지로스러움을 만드는가에 대해 분석해보고자 하였다. 산업의 전문성과 옛날 건물의 입면, 거리에서 분주히 일어나는 활동들이 을지로 인쇄골목의 아이덴티티를 만든다. 내 프로젝트를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을지로의 아이덴티티를 잘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아카이빙'이 그것을 위한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하는 아카이빙이란 단순히 기록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활용이라는 목적을 갖는 생산 행위이다. 단순히 기록을 차곡차곡 쌓아두는 것이 아니라, 기록의 내용, 과정 등에도 신경을 쓰는 일이다. 인쇄골목 안에서의 아카이빙 활동은 하나의 순환을 만든다. 타겟은 기존에 있던 사람들과 새로 들어오는 청년층, 그리고 방문객으로 삼았다. 오래 전부터 일어났던 인쇄 산업을 기록하고, 기존의 인쇄소들은 그 기록을 스스로 활용한다. 빈 가게 곳곳에 들어오는 청년들의 작업실은 그 축적된 기록들을 인식하고 재해석하며 조금 더 다양한 활용을 가능하게 한다. 그 사이로 방문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을지로의 아이덴티티를 경험할 수 있다. 나중에 이 골목이 계속 을지로 인쇄골목으로서 존재할 지는 모르지만, 이 공간에서 일어나는 행위들과 결과물을 기록하고 인식하며 새롭게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두는 것이 이 프로젝트의 역할이라 생각한다.
컨셉 다이어그램 양단의 기존 인쇄소와 청년 작업실이 기능적인 공간이라면, 그 사이를 연결하는 아카이빙 뮤지엄은 도시를 거닐 듯 자유로운 공간이었으면 했다. 이 다이어그램을 어떻게 건축화하기 위해 보이드의 역할에 대해 생각했다. 보이드를 통해 각 공간을 연결하고, 보이드는 서로 연결되거나 연결될 가능성을 가진다. 물리적 단절과 시각적 연결을 하는 보이드도 존재하며, 이 보이드라는 언어가 잘 읽히도록 하기 위해 주변 슬래브를 층층이 배치하였다.
사이트는 을지로 인쇄골목의 가장 큰 길 바로 옆에 위치한다. 또한 방문객들이 많이 찾는 골목에서 접근이 쉽다. 보이드를 따라 들어오면 지상층은 기존 사이트에 위치하던 인쇄소들과 주거를 위한 로비, 그리고 뮤지엄 로비로 이루어져 있다. 아카이빙 뮤지엄은 도시를 거닐듯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도록 계획하였다. 상층부에는 주거가 가능한 청년 임대 작업실이 있다. 인쇄소와 뮤지엄, 작업실과 뮤지엄이 만나는 부분은 아카이빙의 활용에 해당하는 활동들이 활발히 일어날 수 있도록 하였다.
사이트를 그대로 extrude한 덩어리에서 보이드의 위치를 찾고, 각각의 보이드를 만드는 몰드를 만들어준다는 방식으로 매스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