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맨해튼 57번가의 펜슬 타워들은 표면적으로 주거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그 본질은 자본이 도시의 가장 비싼 좌표를 점유하기 위해 콘크리트 부피로 치환된 거대한 수직 금고다. 이는 마르크스가 예견했듯 모든 견고한 가치가 대기 중으로 증발하는 이 유동성의 시대에, 역설적으로 가장 무거운 물성을 통해 자산을 격리하려는 시도다. 절대적 가치가 소멸하고 모든 것이 변동하는 그래프 위의 한 점이 된 지금, 이 기형적인 타워들은 시대의 풍경을 적나라하게 대변한다.
이러한 유동성의 풍경은 건축이 처음 태동했던 순간의 본질을 다시금 환기시킨다. 기원전 9,000년경 인류가 처음 축조한 저장소는 잉여 생산물을 남겨둠으로써 자연이 강요하는 실시간성을 파괴한 사건이었다. 저장소의 벽이 세워지는 순간 현재와 미래 사이에는 물리적인 시차가 발생했고, 이는 곧 미래라는 추상적 개념을 공간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건축적 발명품이었다.
저장할 대상의 가치가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은 지금, 건축의 시선은 무엇을 담느냐가 아닌 어떻게 담느냐로 옮겨가야 한다. 내용물은 끊임없이 변하지만 그것을 다루는 행위의 구조는 남기 때문이다. 본 프로젝트는 이 지점에서 저장을 사물이 놓인 정적인 상태가 아닌,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으로 재정의한다. 저장이란 발신자가 수신자에게 무언가를 전달하려는 의도를 가지되, 그 시간을 물리적으로 지연시키는 행위다.